퍼빙, 스마트폰이 바꾼 문화의 단면
최근 퍼빙이라는 말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퍼빙이란, 최근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퍼빙(phubbing)의 정확한 뜻은 휴대전화의 'phone'과 무시한다는 뜻의 'snubbing'의 합성어로 주변 사람에게 냉담할 정도로 스마트폰에만 열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퍼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엔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성하여 ‘스몸비(smombie)’라는 신조어도 유행했던 만큼 현재 이 시대에서 스마트폰은 우리 문화에서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한번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우리는 과연 눈 앞의 상대보다 스마트폰에 더 많은 눈길을 주고 있지 않은가? 일상 생활 속에서도 퍼빙이라는 단어가 적용될만한 순간들이 많다. 가족과의 식사에도 아이폰은 수저보다 더 가까운 곳에 식탁위에 올라와 있고, 까페에서도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은 언제든 꺼내야할 무기인냥 내 손에 붙어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곁의 상대방과 아닌 스마트폰과 대화를 한다.
많은 심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스마트폰이 결국 우리 사회의 정서적 공감 능력 결여와 연결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직접 대인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눈빛,손짓,몸짓,그리고 진심을 우리는 이제 단문 텍스트 몇줄로 대신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할때도 전화로 하기보다 문자나 카톡으로 대신하는 사회. 어쩌면 복잡할 것 없이 심플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SEND와 RECEIVE로만 이루어지는 단순한 사회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텍스트로 설명되지 않는 내 마음을 전달해야하며, 텍스트로는 말 할 수 없는 또는 말 하기 싫은 표정과 감정을 전달해야한다.
스마트폰이 이 사회에 유용한 기능을 많이 하고 있지만 그러한 단면에는 퍼빙이라는 단어가 나온것 처럼 인간과 인간을 나눠놓는 이러한 양면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급한 일이 있어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아닌 우리는 무의식 중에 스마트폰을 찾고 놓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혹자는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고 있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공감하는 능력도 위협받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먼 훗날 우리 인간은 스마트폰에 언어능력까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퍼빙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시니컬한 사회의 단면을 풍자하는 단어로만 그쳤으면 좋겠다.